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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雜說/테마사

모차르트의 레퀴엠 작곡배경

Dohwasa 2010. 9. 1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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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생애 마지막 해였던 1791년 봄에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받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의 의뢰였고, 당시 모차르트는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보헤미아 왕 즉위 기념식을 위해 의뢰받은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 그리고 시카네더에게 의뢰받은 대작 징슈필 '마술피리' 의 작곡으로 한창 바쁠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총 100 두카트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차르트의 당시 공식직책인 황실 작곡가 (무도회 음악 작곡) 의 연봉이 800 플로린으로, 100 두카트면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의 금액으로, 그것도 절반인 50두카트를 선불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조건은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던 모차르트에게는 쉬이 거부할만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모차르트는 레퀴엠의 작곡을 수락하게 됩니다.

실제 작곡은 의뢰받고나서 한참 지난 1791년 9월 경 시작하게 됩니다. 시작할 무렵에도 '마술피리' 의 마무리, 모차르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의 작곡 등으로 한창 분주했었던 때였죠. 결국 모차르트는 사망할때까지 제 1곡 인트로이투스, 2곡 키리에부터 오페르토리움까지의 성악부, 베이스와 관현악부의 주요 음형까지만을 쓸 수 있었고 익히 알려져있듯이, 라크리모사의 8마디째에서 레퀴엠의 작곡은 중단되고 맙니다.

이후 미완성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생전 모차르트가 높이 평가했던 동료작곡가 요제프 아이블러에게 미망인 콘스탄체에 의해 보필이 의뢰되어 3곡 세쿠엔티아의 오케스트라 부와 라크라모사의 9마디째부터의 소프라노 성부가 쓰여지고, 아이블러가 작업을 중단한 이후에는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에 의해 나머지 부분이 쓰여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곡은 마무리 되었지만 곡을 마무리하고 보필했던 작곡가들은 가능한 모차르트의 작곡 의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쥐스마이어의 경우 코무니오 부분은 모차르트가 직접 쓴 키리에를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곡을 의뢰했던 사람은 나중에 밝혀지는데,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이 작곡한것으로 하여 발표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익명으로 곡을 주문했던 것이죠.



지식인 답변을 위해 작성한 내용인데 역사잡설 카테고리용으로 적당한 것 같아 포스팅합니다.
일부 내용 보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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