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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2/10/31 - 기억을 위한 기록

Dohwasa 2022. 10. 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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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험이 있던 날이었고, 시험 뒤의 일정을 예상치 못한 문제로 취소해야 했던 날이었다. 겨우 귀가해서 집에서 인터넷을 하다보니 요 며칠사이가 할로윈 주간이구나 라는걸 알았는데, 할로윈에 뭘 한다는 건 조카들 어린이집이나 영어학원 행사로나 접해봤던 것들이고 내 일상은 인싸의 삶도 아닌데다 우리나라에서 할로윈 때 번화가가 붐비기 시작했던 시기에는 이미 장기 요양생활로 접어들던 시기라서 그다지 내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사는 아니었다. 

 

그날 내 저녁 일정은 김민재가 소속된 나폴리의 세리에 A 경기, 그 뒤의 손흥민이 나오는 토트넘 프리미어 리그 경기까지 연속으로 해외축구 경기를 보게 되는 날이었는데 나폴리 경기를 보던 도중 커뮤니티에서 이태원 사고의 첫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진 사람 많이 몰린다더니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정도로 생각했고, 토트넘 경기는 얼마 못 지켜보고 너무 피곤해서 일단 누웠다. 

 

잠이 깬 새벽 4시. 내가 잠이 들기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첫 소식을 접했을 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사가 되어 있었다. 

 

사고가 난 위치를 찾아보니 내 인생에서 이태원과의 인연이 몇개월 있었던 그 골목이었다. 내가 군 입대전 몇달간 야간 알바를 했었던 인터넷 카페(당시에는 PC방과 인터넷 카페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었고, 내가 일하던 곳은 PC방이라 하기에는 너무 적은 댓수와 카페처럼 음료를 만들어 돈을 받고 제공하던 곳이라 인터넷 카페로 보는게 맞을 것 같다)가 있던 곳과 직선으로(지도상에서 그은 직선이 아닌, 실제로 그 해밀톤호텔 뒤편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 직선이다) 200m도 채 안되는 곳. 알바 이후로 이태원을 안간지는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정도가 지났지만 그 동네 그 길의 느낌이 로드뷰로 봐도 낯설지 않았다. 

 

거의 이틀이 지나는 지금까지 뭔가 길게 글을 쓸 수 없었다. SNS 상에 팔로우하던 이들이 올리는 추모글에도 좋아요 같은걸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사이 지인이나 친인척 중에 별 일이 없었다는게 다행이긴 했지만 길지는 않았어도 내 인생 일부를 보냈던 곳에서 있었던 슬픈 사고는 하루 넘게 내 속 한켠에 무겁게 있었던거 같다.

 

그렇게 차마 뭔가를 쓰지는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많이 봤는데, 이런 상황에도 누군가에게 꼭 분노해야만 하는 병이 있어 그 제물을 찾아 헤매는 자들, 사람의 도리는 개나 줘버리고 명예욕에 미친 자들, 그 와중에 이걸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눈치를 보는 자들과 그중에 눈치도 없는 자들, 그 사이를 참지 못해 입으로 매를 버는 자들, 하찮은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까지. 하루 넘는 시간동안 너무나도 많은 인류애 사라지는 난장판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아이러니하지만 인류애가 사라져가면서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걸지도.   

 

 

인생의 정점에서 허망하게 스러져간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평온히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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