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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라샤펠 조약(아헨 조약)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본문

歷史雜說/서양

엑스라샤펠 조약(아헨 조약)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Dohwasa 2008. 9. 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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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라샤펠 조약(아헨 조약)

프랑스어로는 엑스라샤펠,
독일어로는 아헨(Aachen)이라 불리는 쾰른 남서쪽 70km 지점의 도시에서 1748년에 체결된 조약.
아래 내용이 조약에 의해 각 국이 확보한 영토와 권리.

프랑스 : 케이프브레튼 섬의 루이스버그 요새와 노바스코샤
영국 : 인도의 마드라스
합스부르크 왕가 : 오스트리아 영토에 대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유권 보장
프로이센 : 슐레지엔
스페인 : 이탈리아의 파르마 공작령, 피아첸차 공작령, 구아스탈라 공작령
영국 : 하노버 가문의 영국 및 하노버 통치계승권 인정.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1740년 10월 20일,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 카를 6세가 사망했다.

카를 6세의 사망 후,
바이에른 선제후인 카를 알브레히트는 신성로마제국 제위의 계승권을 주장했고,
작센과 스페인 역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끄는 오스트리아와 오랜 적대관계였던 프랑스는 이 기회를 노려
합스부르크 왕가에 적대하는 세력들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으나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 와중에 프랑스는 인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영국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1740년 12월 16일, 프랑스와 결탁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의 영토 슐레지엔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1741년 4월, 몰비츠 전투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점령하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력에 대해 유럽 각지에서 의문을 품기 시작하게 되었다.

불과 1개월 뒤, 프랑스는 바이에른, 스페인과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어 작센과 프로이센도 동맹에 합류하였다.
반면, 프랑스와 해외식민지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던 영국은 프랑스가 주축이 된 세력이
자국의 상업활동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여 프랑스의 적대 세력인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게 된다.

프랑스-프로이센-바이에른-스페인-작센 연합은 이후 프랑스-바이에른 동맹군의 오스트리아-보헤미아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고,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를 오스트리아에서 인정하게 되면서 프로이센이 연합에서 탈퇴하게 되어
결속력이 약화되었다. 이어 오스트리아는 역공에 나서 바이에른을 침공한다.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영국은 하노버-헤센과도 연합하여
1743년 6월 27일 바이에른 데팅겐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대파하였다.
이어 1743년 9월에는 사보이아 왕국이 오스트리아-영국 연합에 합류였다.

1745년 1월에는 연합의 한 축이었던 신성로마황제 카를 7세(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브레히트)가 사망했다.
뒤를 이은 아들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는 바이에른을 돌려받는 조건 하에
왕위계승권을 포기하고 프란츠 슈테판(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을 황제로 선출하기로 약속하였다.

전황은 오스트리아-영국 연합에 유리해지고 있었고, 전쟁은 1744~45년에 걸쳐 발발한 제2차 슐레지엔 전쟁으로 이어졌다.
제2차 슐레지엔 전젱은 드레스덴 조약으로 종결되었으나,
1748년의 엑스라샤펠 조약 체결 전까지는 국지적으로 확실한 승패구분없이 계속 지속되었다.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적 부담에 시달리던 전쟁 참가국들은 결국
1748년 10월, 엑스라샤펠 조약(아헨 조약)을 체결함으로 9년여에 걸친 전쟁을 종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대부분 유럽 지역 내에서의 쟁점에 대한 내용만을 처리하여
영국과 프랑스간의 유럽 외 지역에서의 분쟁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결을 보지 못한 조약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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