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Hiding
2023/3/9 - 보호관찰사, 그리고 베팅 본문
제목은 이전까지는 모르다가 입원 중 우연하게 알게 된 어떤 직책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쓰는 얘기는 저 직책에 대한 얘기가 아닌, 입원빌런과 관련된 얘기다.
오래 입원하고 다인실에 있다보니 이런저런 환자들과 병실을 같이 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중에 빌런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7~8년전 대학병원 장기입원때 만큼 빌런이 자주 출현하지도 않고 그때만큼 내 주변 사람들은 저런 사람 없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막나가는 빌런들이 나타나지도 않아 지금의 입원생활은 단조로운 일정때문에 지루하다는 점만 빼면 그리 힘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온 빌런은 단 이틀만에 나한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겨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2월 초에 쓴 그 쫄보 빌런처럼 직접적으로 신경 긁는 쪽으로는 대단한건 없었지만 최근 사회의 여러 사건사고들과 시기적으로 부합하는 면도 있는 빌런이라서. 그리고 이 빌런에 관해서는 있었던 일을 시간순서대로 적어야겠다. 왜냐면 그래야 내 추측을 완성시켜준 제목의 "보호관찰사"의 설명이 명쾌해지니까.
이 빌런의 첫 인상은 일단 젊은 사람이구나로 시작한다. 그리고 수술전 이 빌런은 자기 가족에게 담배를 챙겨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병원이 보통 금연이 상식이긴 하지만 다리 수술을 한 다음날에도 1층 건물 출입구까지 휠체어를 손수 끌고나가서 피는 근성을 가진 흡연자들을 많이 봐와서 아 이 빌런도 흡연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사람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다음날, 수술을 하고 온 직후부터 빌런의 활약이 시작된다. 수술 후 느끼는 고통은 사람에 따라서 다들 다르고 아픈거는 환자 본인만이 아는거라 나처럼 당뇨족이 오래된 사람이 발 같은데 수술 후 느끼는 것과 보통 사람들이 다리 수술 후 느끼는 것이 천양지차일수는 있는데 두 달 가까이 본 수술하고 온 환자 중 이 빌런이 호소하는 고통은 그 누구보다도 대단했다. 흡사 대학병원 입원시절 CPR팀 불러야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던 환자의 데자뷰 같은걸 느낄 정도로.
마취도 덜 풀려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프기는 또 엄청나게 아팠는지 이송원, 간호사 할거없이 근처에 있는 사람들한테 쌍욕을 난사하고 심지어는 수술 후 대기중인 가족에게도 쌍욕을 퍼붓는데 나중에 보니 본인도 기억을 잘 못하긴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계속 지켜본걸 생각해보면 진짜 기억을 못했던건지는... 어쨌든 그렇게 겨우겨우 침상에 눕고 나서도 한참을 고통 호소 및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데다 쌍욕 역시 그치질 않아서 내가 잠시 휠체어 타고 휴게실로 피신나가있기까지 했다. 이어폰을 끼는 방법도 있긴 한데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그거 막으려다간 내 고막에 무리갈 정도로 볼륨 올려야 할거 같아서.
1시간 가까이 지나니 욕설은 그쳤지만 고통 호소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처음에 도착한 빌런의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등장. 그런데 희한한 일이 발생했으니 고통 호소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숨은 조금 가쁘게 쉬지만 죽겠다, 아프다 등의 하소연은 상황 종료. 무통주사나 진통제 효과가 이제 듣나보다 싶어서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갔다. 바로 옆이니 귀 막지 않은 이상 들리는 빌런과 그 아버지의 대화 중에 또 담배 얘기가 나왔다. 담배를 피고싶어도 병원에서 담배피는건 나중에 담배냄새도 나고 민폐라면서 그 아버지가 빌런에게 훈계하는 내용이었다. 이때까지는 난 이 빌런이 대학생인데 아르바이트 하다가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떠난 후 다시 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다시 고통 호소와 하소연, 숨넘어가는 소리가 시작됐다. 이떄까지는 나도 순진한게 무통주사 효과가 끝났나보네 아프겠다 이렇게 생각했지. 그리고 들려오는 대화내용에서 난 빌런이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인걸 알게 됐다. 퇴원하고 나서 학교를 가야하는데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용 뿐이고, 3저학년부터 저층이고 3학년은 5층인데 엘리베이터를 쓸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얘기로. 그런데 담배 관련 얘기는 그냥 지나치듯이 들은지라 이걸 결부시켜 생각하진 못했다 이때까지는. 그저 대학생인줄 알았는데 고등학생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던거다.
그리고 이 빌런의 여자친구가 면회를 왔는데... 여전히 가쁜 숨 + 숨넘어가는 소리 및 고통 호소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있다 이 빌런의 친구(남자)가 면회객으로 합류를 하면서 고통 호소 및 하소연이 중단됐다. 뭐지? 남자가 있으면 고통이 멈추는 이상한 이 증상은? 점점 빌런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면회객 듀오는 병원에서 규정한 면회시간을 몇차례나 주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면회시간을 20분 넘겨서야 퇴장했다. 자발적인 퇴장은 아니다. 1/3이 욕설이 대화 들려오는게 질린 내가 간호사 호출벨을 눌러 쫓아낸거다. (그리고 호출벨까지 눌러서 쫓아내는건 이틀 연속 이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빌런은 조용해졌다. 징징대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하루가 지나고 나서는 점점 이 빌런의 정체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단순 징징거림이 심한 알바하다 다친 고3 빌런에서 정체가 뭔지 대충 짐작이 가는 빌런으로. 혼자 있을땐 조용한 편이지만 가끔 통화를 상당히 길게 하는데 내가 이어폰으로 귀를 막지 않고 있을때 들렸던 것이 면회온다는 담임선생을 "미친놈"으로 지칭하면서 친구 상대로 뒷담화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다친 것은 아니니 담임선생이 원인제공자는 아닐거고 좋은 마음으로 병문안 오는 행위에다가 미쳤다는 비난을 퍼붓는 걸 보면서 담임선생과 사이가 안좋은 학생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후에 또 우연히 들려온 전화통화에서는 결정적인 키워드 "관찰보호사" 가 나왔다. 병문안 온다는 담임선생 뒷담화를 누군가와 하면서 관찰보호사 그 인간도 온다그래서 둘 다 오지말라고 그랬다, 미친놈들인가봐 라는 내용이었다. 담임선생과 악감정이 있고, 관찰보호사가 관찰중인 학생이다? 그때서야 잠시 잊어먹고 있었던, 내가 처음에 이 빌런이 대학생인가보다라고 착각을 하게 만든 "담배" 가 생각이 났다. 더해서 고등학생인데 집안에서까지 담배 피는것을 알면서도 방조중이라고?
의아했던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보호관찰사가 붙는다면 가해자거나 피해자 둘 중 하나일텐데 관찰이 필요한 대상이라면 가해자일 가능성이 더 클테고, 아무리 그 나잇대 애들이 욕을 많이 한다지만 지나치게 심각한 대화중의 강하고 다양한 욕설 비율 및 다양한 뒷담화 대상들, 찾아온 면회객들의 상태...그러니까 그 빌런의 친구들 말인데 내가 커튼을 쳐놓고 있어서 직접 본게 아니라 세세하게 적지는 않겠지만 빌런과 가족, 면회객간의 주고받는 대화로 유추한 모습들 역시 피해자의 지인으로 보기는 어렵고 지루함을 못이겨서인지 계속되는 전화통화로 들려오는 내용들까지 더했을때 아무래도 이 빌런은...
그저 이틀 연속으로 병원 규정 계속 오바하면서 뻗대는 면회시간이나 잘 지켜주고 다인실에 있으면 그놈의 스마트폰 진동모드로 해줬으면 해는게 개인적 바램이다. 보호관찰사까지 붙은 본인 업보는 알아서 청산하겠지만. 그런데 고3에 관찰보호사 붙은 것도 학적부 기록에서 잘 지워지나 모르겠다. 하도 학폭자녀 둔 부모들이 온갖 꼼수들을 잘 개발해대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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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호관찰사에서 "그리고 베팅" 을 추가했다.
아마 가족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이 빌런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것 같은 정황이 추가됐기 때문인데, 일진미화물로 비판이 많은, 최근에는 그냥 조폭물이 된거 같은 모 네이버 웹툰에 나올법한 학생의 현실판인가 싶은 정황이 생겨서 제목을 급히 수정했다. 정황 사건 발생 시간부터가 일단 이 보호관찰 빌런의 무개념을 알 수 있는데, 무려 새벽 1시다.
병실에는 이 보호관찰 빌런 외에도 자주 등장하는 패턴인 나이 지긋한 마이웨이 또는 병실이 내 안방이요 빌런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빌런들의 유형은 4인실에 그 누구도 TV 시청을 하지 않는 적막한 상태에서도 집에서 TV보는 것 처럼 볼륨을 올려서 병실 전체에 내가 지금 미스터트롯을 보고있어요 라고 광고를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건 기본이고, 병원 규정을 씹는것에 더해 입원시 의료진이 이전 수술부위 등 병력을 물어보면 그런걸 니들이 알아서 뭐하는데 부러진거나 신경쓰라는 막말은 기본탑재를 한 유형이다. 그렇지만 보통 너무한거 아니냐고 일침을 놓거나 간병간호인력분께 주의좀 줘 달라고 그러면 일단 조용해지는 편이라서 가벼운 수준의 빌런같지만... 이 유형의 빌런은 높은 확률로 한글을 못 읽는 경우가 많다.
병원 개인 TV 앞에 11시 이후에는 TV를 꺼달라는 문구가 써붙여져 있음에도 본인이 봐야하는게 있으면 새벽 1시, 2시 심하면 밤새 TV를 틀어놓기도 한다. 물론 자기딴엔 볼륨을 줄인다고 줄이긴 하는데 다들 잔다고 적막한 병실안에 볼륨 줄여봤자 무음 아닌이상에야 들리는건 당연지사. 그러면 휴게실 나가서 보든가 하면 될텐데 그건 또 귀찮은지 절대 안그런다. 입원 초기에는 조선족으로 의심되는 중화채널 애청자 마이웨이 빌런이 잠시 있더니 이번 마이웨이 빌런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애청자라 11시 TV 꺼주세요 따위는 간단히 씹고 불 다꺼진 병실에서 그걸 보고 있었으니... 간호간병인력 통해 주의 줘봤자 끄는 척만 하고 다시 켜는 짓거리를 반복하는지라 나도 그냥 인이어 이어폰 끼고 누워버렸다. 볼륨은 나한테 들릴정도만 해도 낮처럼 TV 볼륨 올린건 아니라서 차음은 충분히 되는 편이기도 했고.
그런데 인이어도 뚫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난 병실의 누군가가 갑작스런 통증이나 낙상사고라도 발생해서 의료진 호출이라도 한 줄 알고 인이어를 뺐는데 들려오는 것은 보호관찰 빌런의 통화 목소리였다. 새벽 1시를 넘겨서 당당한 전화통화도 우스웠지만 처음부터 들은 것도 아닌 통화내용이 충격적이었는데, 대략 어떤데다가 충전이 되는지를 문의하면서
"베팅 가능하죠?" "텔레그램 다시 깔아야되겠네"
위의 본문에서 언급했지만 이 보호관찰 빌런은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이 불법토토 내지는 도박사이트로 추정되는 곳에 문의전화를 넣고 베팅을 운운하고 있었다. 내가 제목을 수정하고 내용을 추가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