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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하이저 HD569 (8.7) 본문
젠하이저 600번대 시리즈는 전 제품을 다 모았고 프로토타입 격인 5x5번대, 580 계열 역시 한정판으로 나온 580 jubilee를 제외하면 전 모델을 다 갖고 있지만 5시리즈를 모을 계획은 올해 초만해도 전혀 없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아마도 5시리즈 프레임을 쓴 620S 입수가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은데 그때부터 5시리즈 프레임이 야금야금 늘어가더니 어느새 그 네번째, HD569를 입수하게 되었다. (620S, 560S, 599에 이어)
알고 있는게 100%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젠하이저가 현재 헤드폰에 쓰는 드라이버 중 KDH580은 600/650에 들어가고 SYS40은 700/660S/660S2에 들어가는데 SYS 드라이버는 제조공정의 자동화가 이루어진 드라이버라고 알고 있다. 이 SYS로 시작하는 드라이버는 40, 38, 32 등이 확인되는데 그 중 SYS38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당장 내가 갖고 있는 헤드폰 중에서만 뽑아봐도 490 pro, 560S, 599, 모멘텀4 가 있고 노이만 브랜드로 나오는 NDH20/30에도 SYS38이 들어간다. 이 569 역시 SYS38이 들어가 있다.
패키지는 친환경 이슈 반영 전의 패키지인데 이전에 입수한 599도 그렇고 이 569도 아직 재고가 꽤 있나보다. 구성품은 헤드폰 본체와 원버튼 리모컨이 달린 3.5mm 1.2m 케이블과 6.3mm 3m 케이블 2종류가 들어있다. 599와 구성이 비슷하지만 밀폐형이라 그런지 실외 사용을 상정한 리모컨 달린 케이블이 들어있고 6.3mm to 3.5mm 젠더가 빠져있다.
위는 569, 아래는 560S로 패드를 분리해놓고 봤을때 외관상의 차이는 없는 수준이다. 아마 나사를 풀어서 더 안까지 들어다보면 다를지도.
패드도 좀 달라서 600시리즈에 쓰이는 것과 동일한 벨루어 소재인 560S와는 달리 569는 접합부가 보이는 더 촘촘한 벨루어 재질을 쓰고 있다. 처음엔 800/820에 쓰인 이어패드 소재와 같은 알칸타라 느낌의 재질인가 했는데 느낌이 조금 다르다. 더 짧고 빽빽한 느낌의 소재로 되어있다. 촉감 자체는 괜찮은데 뭔가 오래되면 쩌저적 하고 갈라져서 바스라질 것 같은 느낌이다.
해외 리뷰에서도 간혹 나오는 얘기지만 저 이어패드 소재 때문인지 패키지 상의 문제인지 이어패드 표면이 약간 우글우글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되겠지만 저런 문제가 있다면 패키징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사진은 초점이 약간 나가긴 했지만 무광 소재로 마감된 이어컵 외부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찍은건데 위의 사진이 더 느낌이 사는 것 같다. 약간 고무 느낌이 나는 무광 소재로 마감을 했는데 나름 이어패드와 같은 톤과 촉감으로 통일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사진 찍어놓은 것 중에 560S의 패드와 안쪽 구조를 비교하기 위해 찍어놓은 것도 있어서 올려본다. 위가 569, 아래가 560S. 실제 패드를 바꿔 끼워보면 스테이징 등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런 패드 소재와 구조 차이에서 오는 차이일거다.
이 제품의 젠하이저 코리아 공식 판매가는 229,000원이지만 할인 판매하는 곳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제품으로 할인가격으로 구입한다면 15~16만원 선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먼저 가성비부터 언급하자면 상당히 괜찮다.
이 제품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같은 밀폐형 헤드폰인 아시다복스 ST-31-02와의 비교를 위해서다. 아시다복스는 일본의 헤드폰 제조사로 소니, 파나소닉, 오디오테크니카, 데논처럼 국내 인지도가 높은 제조사는 아니지만 업력은 상당히 오래된 회사로 2022년 하반기에 예전에 제조했던 자사의 모니터링 헤드폰 ST-31의 음감형 복각버전인 ST-31-02를 출시했다. 이 제품의 정가는 22,000엔으로 국내로 들여오는 배대지 비용 등을 감안하면 이 569 정가와 거의 같아 비교해볼만 한 것 같아 569 중고 매물을 알아보던 차에 쿠X에서 149,000원에 파는 것을 발견해서 구입했다.
ST-31-02와의 비교 전에 먼저 569의 소리에 대해 정리를 해야하는데 고음역대가 살짝 죽은듯한, 약간은 뭉툭한 느낌의 소리를 들려준다. 아예 먹은 그런 소리는 아니고 살짝 어두운 음색이라고 하면 대략 맞을거 같다. 560S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차이는 더 명확하게 나타나고 고음역대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도 약간 어두운 성향으로, 예전 HD600 구형(통칭 돌솥이라 불리는 대리석 느낌 프레임 모델)의 평가에서 나오는 젠하이저 베일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약간 있다. 이 부분은 패드를 바꿔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DAC을 바꿔봐도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아서 개발 시작부터 의도했던 부분인듯 하다. 아직 테스트를 못해본 시도 중에 620S용으로 나온 밸런스드 케이블을 써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드라이버 튜닝 단계에서부터 의도했던 부분(으로 보)이기에 고음은 이래야지 같이 고음에 확고한 철학이 있는 성향까지는 아니라면 569가 쓸만할텐데 고음에 확고한 고집이 있다면 569는 미뤄두는 것이 좋겠다. 밀폐형 헤드폰의 특성인 미묘하게 제한적인 공간감이 있지만 인위적인 어색함이 심하지는 않고, 임피던스도 23옴으로 상당히 낮게 나와서 고시원이나 원룸같이 누음을 최대한 줄인 제한적이고 심플한 환경이 필요한 경우에 쓰기 좋아보인다. 지금에야 스마트폰에 3.5mm 단자가 없어진 시대로 용도가 애매해졌지만 리모컨이 달린 1.2m 케이블도 있어 569 하나로 실내와 실외 모두 간편하게 쓰기에도 괜찮을 것 같다.
다시 구입을 하게 된 계기로 돌아가서 ST-31-02와 비교를 하자면, 음질에서는 ST-31-02가 앞서지만 사용 편의성 면에서는 569가 더 나아보인다는게 결론이다. 위에서 언급한 고음역대의 뭉툭한 느낌, 어두운 음색도 그렇지만 ST-31-02의 소리 완성도가 더 높다. 정말 오래된 얘기지만 아이와 워크맨에서 음장효과(BBE, DSL)를 켜고 안켜고의 차이랄까. 소리 측면에서만 본다면 ST-31-02이 약간은 특이한 공간감과 미세하게 조금 지나칠 수는 있겠지만 더 상위가 맞다. 소리의 밸런스 면에서는 569도 좋은 편이지만 ST-31-02 쪽이 누가 들어도 더 좋게 들릴 부분이 많다. 음악감상 외의 부분에서도 이 차이가 있어서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감상 등에서 이 음색 차이가 더 느껴지기도 한다. 위에서 569와의 외관비교를 했던 560S도 같이 놓고 비교해보면 560S와 ST-31-02는 오픈형과 밀폐형이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가까운 음색이지만 569로 들으면 약간의 어두움과 미세한 울림이 느껴진다. 560S > ST-31-02 >>> 569 정도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데 편의성 측면으로 넘어가면 569 쪽이 우위에 있다. 헤드폰, 이어폰 구입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겠지만 사람마다 소리와 그 외의 것에 두는 비중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편의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ST-31-02의 착용감은 준수한 편으로 머리가 큰 편인 나에게도 측암에 아주 강하지는 않고 딱 괜찮다. 다만 이어패드의 경우 인조가죽 재질을 쓰고 있는데 좀 오래 쓰고 있다보면 달라붙는 느낌이 생긴다. 569는 측압이 ST-31-02와 비슷하면서 이어패드 재질 덕분인지 오래 쓰고 있어도 달라붙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케이블 역시 왼쪽 이어컵에만 싱글 사이드에 교체형 케이블을 채택한 569에 비해 케이블 일체형에 좌우에서 내려오는 더블 사이드 타입인 ST-31-02 보다 관리가 편하다. 교체형 케이블은 케이블 단선이나 단자에 문제가 생겨도 케이블만 바꿔주면 되지만 일체형은 손재주가 없다면 전문가 손에 맡겨 수리를 해야하고 내 경우가 흔하지 않은 경우지만 워낙 헤드폰이 많다보니 자주 쓰지 않는다면 책장에 옷걸이 봉을 써서 헤드폰을 거치해두는데 이 경우엔 케이블 분리 불가능한 더블 사이드 타입이 거치하기 불편하다. 물론 헤드폰 한두개만 흔히 보는 헤드폰 거치대에 올려두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더블 사이드라 해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텍스트가 상당히 길어졌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HD569는 실내외 모두에서 쓸 수 있고 가성비가 좋은 헤드폰이다. 입수 가격과 유사시에 필요할수도 있는 AS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다만 편의성, 유지보수에 비중을 크게 두는 성향이 아니고 할인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다면 ST-31-02 같은 상위호환의 선택지도 있어서 늘 추천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구석도 있다. 그래도 종합적으로는 괜찮은 완성도의 제품이라 평점을 제목과 같이 매겼다.